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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TERSCAPE : 잠기다

 

 

2011년 이후 나는 흐르는 물을 매질媒質로 삼아 존재와 타자/세계의 실체란 무엇인가에 대한 시각적 탐구를 하고 있다. 물을 분사하여 강한 수압에 의해 바탕색을 지우고 씻어내는 나만의 고유한 표현방식인 water drawing으로 형상을 드러내는 워터스케이프WATERSCAPE는 시지각으로는 판명 불가한 ‘무엇’, 즉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실체에 대한 주관적, 감각적 경험의 산물이다. 

 

‘쏴’하고 물을 쏘는 매 순간 나는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지 막막하지만, 물을 타고 흐르다 보면 차츰 온몸에 물이 스미듯 물과 한 호흡이 되고 몸이 저절로 움직이곤 한다. 이때 모든 신체 감관들은 찌릿하고 시간은 해파리마냥 흐느적거린다. 물은 이내 몸을 이완시켜 주름 접힌 나의 푸른 감각 세포들을 흔들어 깨워 나를 흐르게 한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흐르는 것은 아니지만 흐르는 모든 것들은 살아있기 마련이다. 흐르는 물을 매개로 한 이러한 감각적 체험을 통해 나는 존재와 세계의 실체에 대해 통찰하고, 아직 세상에 드러나지 않는 미지의 미적 감각 세계의 주름 하나를 펼쳐 보이고 싶다. 

 

이번 대구 GOODSPACE 개인전의 타이틀은 ‘WATERSCAPE_잠기다’이다. 기존의 워터스케이프가 흐르는 물을 매질로 한 주체의 자율성과 내면 세계에 초점을 두었다면, 이번 전시에서는 주체와 타자/세계와의 소통과 관계성으로 확장, 이를 명상적이고 사색적인 사유의 공간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였다. 긴 직사각형의 전시 공간에 걸린 푸른 색조의 큰 원과 작은 원들의 집합체는 한 주체의 이중적 관점(macro & micro)을 보여준다. 소위 소우주라고 하는 한 주체의 내면 세계는 재현적 세계의 관점에서 보면 micro이겠지만, 주체적 입장에서 보면 그 반대일 수 있다. 나에게는 나의 내면 세계가 당연히 중심이다. 내가 존재함으로써 타자와 세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기존의‘WATERSCAPE_물꽃’ 시리즈는 소우주로서의 한 인간의 주관적인 실존적 감각 세계의 응축된 힘을 구현한 것이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서는 객관화된 재현적 세계의 이미지들이 작은 원들의 집합체 속에 속속 등장한다. 물속에 부유하고 있는 다양한 기호와 표상은 개인의 파편화된 기억의 일부이자 시간의 잔상들이다. 재현적 세계의 이미지를 빌려오기 위해서는 하나의 중간막과 같은 틀/판이 필요했기에 나는 물판화waterprint라는 새로운 표현기법을 고안하고 이를 기존의 물 드로잉 기법과 접목했다. 물판화란 강한 수압을 이용하여 물이 망점을 투과할 때 캔버스에 도포된 바탕색을 씻어내는 방식으로 기존의 색을 입히는 판화 형식과는 정반대의 원리다. 모든 인간은 자기 동일성과 차이성의 반복을 통해 생장하고, 이는 마치 뫼비우스의 띠와 같이 변증법적 반복 운동을 하기 마련이다. 나 또한, 이제 다시 세상 밖으로 시선을 돌릴 시간이 온 것이다. 밖에서 안으로. 다시 안에서 밖으로. 그러나 이번에는 ‘내 안의 바깥’이다.                                    

 

2018 송창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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