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빛, 그것의 의미는
조관용 미술평론가, 2022 창원조각비엔날레 총감독
물은 가스통 바슐라르에게 “대지의 참다운 눈은 물이다. 그리하여 물은 대지의 시선이 되고, 시간을 바라보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1)고 말하는 구절에서 보듯이 인간의 상상력을 촉발시키는 하나의 매개체이다. 하지만 물은 블라바츠키에게 “빛은 차가운 불꽃이며, 불꽃은 불이고, 불은 열을 낳고, 열은 물 즉 거대한 어머니(카오스) 안에 있는 생명의 물을 낳는다.”2)고 말하는 구절에서 보듯이 인간을 비롯한 자연과 우주 만물을 구성하는 주요한 실체이다.
그렇다면 물은 송창애 작가에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물은 그에게 “모든 워터스케이프의 소재, 주된 표현기법, 그리고 그 안에 함축된 의미를 모두 담는 하나의 그릇이다. 나는 실제 흐르는 물을 매질로 삼아 존재와 세계에 대한 실체를 직관적이고 감각적인 산물로써 체현하는 워터스케이프 연작 작업을 해오고 있다.”(작가노트)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물 풍경(The scape of water)과 물(水)로 그린 물(物)이라는 중의적 의미를 표현하는 매개체이다.
물꽃의 생성은 《S·E·T : 별·몸·구의 순환적 생태》 에서 서구의 신성기하학을 상징하는 베시카피시스(Vesica Piscis)의 의미를 자연스럽게 연상시킨다. 물꽃은 송창애 작가에게 물로써 물을 그리면서 탄생한 하나의 풍경화를 의미한다. 하지만 그 풍경화는 물이라는 대상을 외형적으로 관찰하거나, 또는 그것을 변형시켜 탄생시킨 것은 아니다.
물로써 물을 그려내고자 하는 것은 그에게 그림이나 문학 속에서 우울함과 관련한 이미지나 또는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의 『물과 꿈: 물질적 상상력에 관한 상상력 시론』에서와 같이 물로써 촉발되는 물의 이미지를 그려낸 것은 아니다. 물로써 물을 그린다는 것은 그에게 한편으로는 물로써 물의 본성을, 물의 실체를 탐구한 것이며, 또 다른 한편으로는 물의 속성과 조응하는 ‘나’의 내면의 실체를 탐험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물꽃은 몰입적인 창작의 과정을 통해 주체인 ‘나’와 사물인 ‘물’이 서로 조응하며 교감한 세계로서 “자연의 모든 것에는 의식이 있다. 사물에 깃들어 있는 의식은 정령과 같은 ‘영(靈)’이다. 그래서 나무도 의식이 있고, 돌멩이 하나에도 의식이 있다. 우리의 세포 하나에도 의식이 있다. 의식을 다른 말로 하면 진동하는 에너지(빛)이다.”3)고 이야기하는 『퀀텀마인드』의 구절을 빌어 설명하자면 진동하는 에너지를 통해 ‘나’와 ‘물’ 간의 조응하는 의식 세계를 그려낸 것이라 할 수 있다.
1) 가스통 바슐라르, 『물과 꿈: 물질적 상상력에 관한 상상력 시론』, 이가림 역, 문예출판사, 2014, p.52.
2) H.P.Blavatsky, 『The Secret Doctrine: The Synthesis of Science, Religion, and Philosophy』, The Theosophy Company, 1982, p.29.
3) 양남이, 『퀀텀마인드-우주와 나에 대한 양자역학적 탐구-』, 굿모닝미디어, 2024, p.32,
생명은 고립된 존재가 아니라 순환하는 실체이다.
《S·E·T : 별·몸·구의 순환적 생태》
특히 이번에 전시하는 《S·E·T : 별·몸·구의 순환적 생태》 에서 물꽃은 ‘나’와 ‘물’ 간의 내적인 조응 관계뿐만이 아니라 진동하는 에너지의 흐름을 통해 ‘나’와 ‘물’에서 사물로, 그리고 자연으로, 더 나아가 우주와 상호 순환하는 관계라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물꽃의 개체들 또한 라이프니츠의 사방이 모두 막혀 있는 모나드와 같은 입자가 아니라 입구와 바닥뿐만 아니라 내부가 텅 비어 있으며, 회전하는 토러스(Torus)와 같은 매개체로서 진동하는 에너지의 흐름을 통해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으며, 모든 존재는 상호의존하며, 하나가 곧 전체이고, 전체가 하나와 통하는 순환적인 존재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S·E·T : 별·몸·구의 순환적 생태》 은 《워터오디세이: 벼리》, 《워터터널: 몸짓》, 《워터스케이프: 구슬》, 《물꽃씨알 만다라》의 장(場)으로 구성되어 있다. 《워터오디세이: 벼리》는 “존재의 씨 근원과 세계와의 관계망을 비추는 하늘거울을 통해 자기의 내면을 대면하고, 자연 만물과의 긴밀한 관계와 타 개체와의 상호작용을 경험하는 공감각적 예술의 장이다.”라는 작가의 글에서 보듯이 물의 파동을 통한 육체와 순수의식(Spirit)의 관계에 관한 탐험의 여정을 그린 프로젝트이다. 조형적인 기법과의 관계에서 보다 상세하게 설명하자면 《워터오디세이: 벼리》는 물 드로잉 Water drawing으로 그린 ‘물꽃’ 시리즈의 존재의 탐험을 작가의 사상을 내재한 장자의 ’소요유逍遙遊’를 모티브로 삼아 3D 그래픽과 VR 기술을 접목하여 구현한 인터랙티브 영상설치물이라 할 수 있다.
‘소요유逍遙遊’는 작가에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것은 『퀀텀마인드』의 구절을 빌어 설명하면 육체적인 지각 너머의 세계로 “나는 몸의 물질과 마음의 물질로 이루어져 매 순간 파동으로 생각 에너지를 내보낸다. 나는 깜빡이는 입자이자 파동으로 모든 곳에 동시에 있고, 의식을 가진 진동하는 에너지로서 어느 순간엔 구름 위에서 눈 덮인 산을 내려다보기도 하고, 태양 위에 앉아 있기도 하고, 나뭇잎 사이를 날아다니기도 하며, 온 우주에 영향을 주고, 사물들과 상호작용하며, 이 세상을 창조하는 데에 일조하고 있다.”4)고 하는 의미로서 해석할 수 있다. 즉 3D 그래픽과 VR 기술과 함께 인터랙션 행위를 통해 체험하며 마주하게 되는 《워터오디세이: 벼리》 속의 영상이미지들(까마귀, 사람, 자연의 사물들)은 물꽃과 서로 분리된 실체가 아니라 우리의 의식과 물질세계(현실)가 서로 상호 작용하며 변화시키는 세계, 현실 세계에서부터 보이는 것 너머의 세계로 우리의 의식을 확장시킨다.
《워터터널: 몸짓》은 ‘물꽃’의 세계를 워터드로잉이 아닌 작가와 관객이 글쓰기를 통해 나온 이미지들을 바라보며, 자신의 내면의 이야기들을 탐험해 보는 장(場)이다. 글쓰기의 이미지들뿐만 아니라 《워터터널: 몸짓》에서 주목하게 하는 영상은 윤동주 시인의 <자화상> 작업에서 모티브를 얻어 브로켄 광학현상을 이용해 디지털 기술로 시연한 작업이다. 이 작업에서 물꽃은 심상 속의 이미지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자신이 하나의 물꽃일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작은 물방울에 입사한 태양 광선이 후방 회절을 일으킬 때 나타나는 대기 광학 현상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모든 물체들이 마치 둥근 형태의 그림자광륜의 형태를 띰으로써 물꽃은 심상 속에 있는 이미지가 아니라 현실 속에 있는 실체들일 수 있음을 반영하고 있다.
《워터터널: 구슬》은 《워터오디세이: 벼리》, 《워터터널: 몸짓》의 시발점이자 송창애 작가의 고유한 회화 조형 방식인 물 드로잉 Water drawing으로 그린 ‘물꽃’의 풍경을 직시할 수 있다. 《워터터널: 구슬》에서 물꽃의 풍경들은 ‘워터터널’과 ‘구슬’이라는 단어를 통해 그 의미를 음미해볼 수 있다. 워터터널의 의미는 무엇일까? 먼저 물꽃의 작업 과정을 보면 ‘바탕화면 전체를 흑연 또는 청분(靑粉)으로 도포한 후, 에어건에 탑재한 물을 분사하며, 수압을 조절하여 그리고자 하는 형상을 ‘물로 씻어내고 지워서’ 제작하는‘ 기법으로 작가의 말에 의하면 작품을 시작하면 단숨에 완성하곤 하는 데, 끊임없이 흐르는 물을 컨트롤하는 최선의 방법은 그저 흐르는 물에 몸을 맡기고 물과 함께 흐르는 것이라고 말한다.
물꽃의 작업은 2012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10년 이상을 이어져 오는 지난한 작업이며, <물결-물풀-물꽃>이라는 조형론적인 변화와 <흐르다-자라다-피어나다>는 의미의 변천을 가져왔다. 물꽃이 이러한 작업 공정이나 오랜 시간을 통해 조형적인 변화와 의미들을 변모시켜 왔음을 비추어 볼 때 워터터널은 작가에게는 물을 매개로 하여 길고 긴 어두운 터널을 탐험해 온 의식 상태를 비유적으로 암시하고 있으며, 구슬의 의미는 조형의 탐색 과정을 통해 표현된 물꽃의 이미지들을 의미하는 것으로써 마치 명상수행 과정에서 마주하게 되는 “신성한 내면의 푸른빛은 명상수행 중 깊은 삼매 상태에서 나타나 만나게 된다. 이 푸른빛은 나의 근원인 신성한 본성이 내면에서 드러난 것이며, 그 본성의 시각적 표현으로 ‘푸른 진주’라는 표현을 쓴 것이다.”5)라는 구절과 맞닿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워터오디세이: 벼리》, 《워터터널: 몸짓》, 《워터스케이프: 구슬》으로 구성되어 있는 삼분법적인 공간을 조형적으로 통합하는 장은 《물꽃씨알 만다라》이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인사이드에서 아웃사이드로 끊임없는 반복과 겹침을 되풀이하며 회전하는 원형의 띠 속에 작가의 말을 인용하면 “사람과 동물과 식물과 기계가 한데 뒤섞여 우주 자연의 섭리와 만물의 상생적 관계망과 반복되는 인류의 역사를 담고 있는” 《물꽃씨알 만다라》의 토러스(Torus) 구조는 마치 코일이 좌에서 우로, 그리고 우에서 좌로 흐르면서 자연과 우주의 모든 물질을 생성하는 신지학 이론에서 말하는 시원(始原)의 ‘양성과 음성의 원자들’6)을 자연스럽게 떠올린다.
《S·E·T : 별·몸·구의 순환적 생태》 에서 물꽃의 생성과정을 기하학적 도식 과정을 통해 설명하는 배경이미지와 존재들의 순환 과정을 그리고 있는 《물꽃씨알 만다라》는 “공간이 영원 속에서 존재하고 진동(vibration)을 통해 하나의 점에서 공간을 분화하면서 생명과 자연의 모든 물질들이 생성되어 나온다.”7)는 블라봐츠키의 신지학의 구절이나 “하나의 시작은 시작이 없는 하나이고, 하나의 끝남은 끝이 없는 하나(一始無始一一終無終一)”라고 말하며 인간과 자연의 순환과 변화의 원리를 81자로 설명하는 천부경(天符經)의 구절과 일맥상통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송창애 작가의 물꽃은 모던적인 예술 장르의 분류에 의하면 동양화에서 출발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물꽃은 예술 장르적으로나, 그 의미론적으로나 모던이나 포스트모던이라는 분류에 그 의미를 제한하여 정의하는 것은 진부한 담론에 머무르는 해석이며, 그 의미를 왜곡하는 것인지 모른다. 물꽃의 의미는 《S·E·T : 별·몸·구의 순환적 생태》 의 전시에서 회화, 오브제, 영상, 인터랙티브 미디어아트에 이르기까지 매체 간 융합을 시도하며, 예술, 과학, 철학, 역사, 신화, 사회 등의 제반 학문들이나 동시대적인 상황들에 대한 그 의미망을 보다 더 심도 있게 확대시켜가면서 관객의 참여와 상호 작용을 통한 관계의 미학과 예술의 경험적 가치를 중시하는 공감각적 예술의 장을 펼치고 있다. 《S·E·T : 별·몸·구의 순환적 생태》 의 전시는 우리의 삶의 의미들이 단지 개인의 머리 안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몸과 자연의 생명체, 그리고 우주와 어떻게 서로 상호 순환적으로 영향을 주고받는 지를 탐험하는 새로운 예술 개념의 보고서라고 할 수 있다.
4) 위의 책, pp.117~118.
5) 위의 책, p.48.
6) C.Jinarāzadāsa, 『First principles of Theosophy』, Vesanta Press, 1938, p.248.
7) H.P.Blavatsky, 『The Secret Doctrine: The Synthesis of Science, Religion, and Philosophy』, The Theosophy Company, 19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