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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TER ODYSSEY : MIRROR

삼분법적 공간

 

김주옥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조형대학 교수

 

 

 세상의 참모습을 알고 싶을 때 우리에게는 매번 유념해야 할 사안들이 있다. 그것은 크게 ‘있다-없다’를 인지하는 것, 그 둘을 잇는 중간 ‘사이 영역’의 공간을 인식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상상하는 것, 그리고 그가 ‘드러나고 드러나지 않는 부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세상을 파악할 때 그 세상을 파악하는 주체는 ‘나’와 ‘나 아님’의 존재이다. 내가 세상 속에 있건, 세상 밖에 있건 간에, 무엇이 옳은가의 문제는 차치하고, 우리는 이 모든 것을 하나로 연결하여 모든 가능성을 탐색해보아야 한다. 이렇듯 세상을 탐색하기 시작할 때 이미 여러 사안은 걸림돌이 된다. 관념적으로만 존재하는 세상을 어떤 한 관점에서만이라도 바라보기를 시도했을 때 궁극적으로 우리는 이 세상은 분리되지 않은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어쩌면 세상은 우리의 생각과는 상관없이 그저 그런대로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은 사람에 따라 다르고, 설령 같다고 하더라도 서로 다른 단어를 사용하여 그것을 표현하기 때문에 우리는 늘 다른 세계에 산다.

 

 송창애 작가라는 한 사람은 지금까지 세계를 바라보는 도구로 ‘물’을 사용해왔다. 다시 말해 송창애 작가는 ‘물’을 통해 세상을 탐구해 온 것이다. 2011년 이후부터 작가는 ‘Waterscape’라는 테마를 바탕으로 물로써 물을 표현하는 ‘Water drawing’을 해오면서 물을 매개로 실체적 세계를 파악하고자 하였다. 그렇다면 작가에게 ‘물’이라는 질료는 무엇일까? 작가는 자연의 모습에 가장 가까운 은유를 물이라고 보았는데, 이는 생명과 본질을 나타내는 것이다. 여기서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점은 작가는 단순히 관념의 차원이 아닌, 실제 흐르는 물을 매개로 수행적인 반복 작업을 통해 흩어진 몸과 마음의 소실점을 하나로 통합하는 법을 체득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지점으로부터 작가는 비로소 물이라는 질료가 물질과 비물질의 경계를 마치 엿가락처럼 휘어지게 만들고, 제 3의 미지의 장속으로 빠뜨리는 미묘한 힘을 지님을 알아차리게 된다. 이후, 작가는 예술뿐만 아니라 존재와 세계에 대한 시선과 관점을 달리했고, 스스로 물을 만나기 이전과 이후를 기점으로 다른 사람임을 자처한다. 우리의 관념과 세상의 물질, 정신과 현상 등 세상에 모든 존재들은 이분화된 개념으로 우리에게 이해되지만, 작가는 세상과 나를 구분되지 않는 하나로 인식하고 있으며 이는 이번 전시 《WATER ODYSSEY: MIRROR》에서 분명히 전달되고 있다.

 

 세상의 있음과 없음, 그리고 있음과 없음의 중간을 이야기하며 이것이 왜 분리될 수 없는지를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거론하는 것이 ‘연결성’이다. 잘라짐도 나뉨도 없는 물이 그렇듯 작가는 이것을 ‘잇기’라는 단어를 통해 표현한다. 작가는 생명의 역동을 물의 파동으로 시각화하는데, 이것을 보는 관람객은 존재의 원형에 대한 사유의 체험을 가질 기회를 얻게 된다. 그런데 이 전시의 제목인 ‘WATER ODYSSEY: MIRROR’에서 보이는 거울은 ‘나’와 ‘세계’의 반영을 의미한다. ‘나’라는 주체가 타자화되는 경험은 내가 관찰자가 되어 나의 바깥에 있는 존재를 ‘타자’로 인식하고 대상화함으로써 드러난다. ‘나’이자 ‘나 아닌’ 존재인 거울 속의 ‘나’는 사실상 나이면서 내가 아니다. 마그리트가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말로 표현한 그런 기호학적인 이야기가 아닐지라도 우리는 내가 인식하는 나와 내가 관찰하는 대상으로서의 나를 생각해 봤을 때, 사실 그것의 실상은 우리의 해석에만 빚지는 사유들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며 거울을 언급하는 이유는 나이자 내가 아닌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서이다. 인간은 나를 인식하건 타인을 인식하건 절대적으로 ‘나’라는 관찰자를 필요로 한다. 그것이 비단 ‘나 자신’을 보는 행위뿐일지라도 말이다. ‘나’를 묘사하는 여러 가지 단어가 있겠지만, 주체, 진아, 참나 등 여러 단어를 통해 드러내려고 했던 것은 ‘나’를 이해하기 위해 등장하는, 나를 인식하고자 하는 관찰자이자 주체인 ‘나’이다. 이런 말이 너무 복잡하다면 그럼 다른 예시로 넘어 가보자. 나를 인식하는 행위에도 나를 분리시켜 관찰하는 관찰자와 그 관찰자가 바라보는 대상이 존재한다면, 앞에서 우리가 일단 인정하고 넘어갔던, ‘세상은 분리된 것이 아니다’라는 전제 속에서 우리가 유념해야 하는 것이 있다. ‘그렇다면 왜 다르게 보이는 것들이 분리되지 않았느냐?’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입증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다. 필자가 감히 예상하기에는 송창애 작가는 바로 이 지점을 이야기하기 위해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작가가 설정한 상황 속에서 관람객은 체험을 한다. 이번 프로젝트는 크게 세 섹션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첫 번째로 작가의 회화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 두 번째로 관람객이 인터랙티브 미디어아트를 체험할 수 있는 구역, 세 번째로 물꽃 씨알이 보관된 장소가 그것이다. 우선 작가는 한 번 터치한 붓을 떼지 않고 ‘한붓그리기’의 방식으로 회화를 표현해 왔는데, 이것은 우연으로 가장된 필연의 조화물이자, 물의 파동을 통한 움직임으로 만들어지는 형상이었다. 우리가 이항 대립과 이분법의 파괴를 부르짖고 있지만 우리는 이분법적 세계관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세상을 개념화하고 있다. 그런데 송창애 작가는 그 개념들을 부정하지 않고 더 어렵지만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바로 ‘삼분법적 시각’이다. 이는 정반합의 원리와 비슷해 보이지만 정-반이 교차되고 희석되어 ‘합’이라는 완성된 모습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실재와 현상으로 세상을 보았던 방식 이면에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제3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행위이다. 사실 이것은 ‘사유불가능’한 것이 될 수도 있지만, 어차피 세상은 증명 가능한 것이 아니라 내가 이해하는 방식으로 해석되는 것이라 미루어볼 때, 우리는 가능성을 탐색하기 위해 진실과 거짓의 테두리를 벗어던지고 작가가 이야기하는 삼분법적 ‘공간’을 파악해봐야 한다.

 

 우선 작가가 제시하는 제3의 공간은 세계에 존재하지만 공간화되지 않은 물질과 비물질을 초월한 공간이다. 이것은 우리의 사유로 등장할 수도 있고, 어떤 것의 ‘틈’ 또는 ‘잉여’의 모습으로도 존재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또한 우연과 필연이 조화되고 간극이 소거되었을 때 등장하는 새로운 공간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을 쉽게 예로 들면 관람객이 전시장을 찾아 작가의 의도대로 주체와 객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파악하려는 자기 심연의 접속 기회를 가질 수 있을 때 그 사유하는 장소는 내가 생각해왔던 세계와 새로운 세계를 이어주는 공간을 만들어 낸다. 그런데 여기서 제공된 무수히 많은 요소들과 뻗어나갈 수 있는 갈래를 만들어내는 가능성들은 본래의 나와 세계의 무언가를 연결하여 어떤 무언가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무언가가 놓여지는 공간은 때로는 내 머릿속에, 때로는 마음속에, 때로는 부유하는 형태로 존재한다.

 

 어차피 의식화된 공간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느낄 수 있는 것들은 많지 않다. 그런데 미디어아트의 인터랙션을 체험하고 있는 관객들의 공간에는 관람객이 형성하는 새로운 이미지(물꽃 씨알)와 그것이 반응하여 전송된 바닥 공간의 영상 소스가 중첩된다. 물꽃이 하나의 점이 되어 사라지는 순간, 바닥 공간이 진동하며 마치 우주의 빅뱅처럼 물의 파동과 함께 그것과 연결된 또 다른 공간이 만들어진다. 여기서 진동이 만들어지는 장소는 작가가 설정해 놓았듯 바벨탑에 기어오르기 위해 꿈틀대는 인간 군상들의 모습과 오버랩된다. 여기서 등장하는 많은 인간의 모습은 현상계의 세상에서 살고 있는 우리를 보여주고 이것은 계속해서 연결되는, 마치 양자얽힘과 같은 형태로 이 세계를 만들어낸다. 《WATER ODYSSEY: MIRROR》 전시의 모든 공간은 사실상 내가 볼 수 없는, 하지만 벽 뒤로 존재하는 세상을 보여주듯 그 전체의 세상을 묘사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여러 분리된 공간은 사실 하나의 본성이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지며 존재하는 세 개의 다른 현상에 대한 본성이 아닐까?

그렇다면 이 세상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 것인가? 현상계에 무언가가 드러나기 위해서는 그것들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이 필요하다. 현상계의 나타남은 본질을 포함하고 있고, 그것을 만들어 낸 요소들은 본성을 품고 있기 때문에 그 조건은 사실상 본성의 측면을 가지고 있다. 사실상 《WATER ODYSSEY: MIRROR》 방에 존재하는 다른 형상을 가진 그것들은 어떠한 것의 일부분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 요소들은 총체의 작은 한 부분이 아닌, 본질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마치 프랙탈적 본성과 같다. 그리고 이는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에서 볼 수 있듯 이 현상과 그 현상을 만들어 낸 요소들은 모두 본성이 같고, 그리하여 이는 경계가 없다는 것과 같다. 이 안에는 모든 인(因)과 연(緣)이 합쳐진 것이다. 그리하여 이 세계는 마치 송창애 작가의 물처럼 경계가 없이 흐른다. 그리고 이것은 또 다른 제3의 공간을 만들어 낸다. 그것은 우리의 마음이기도 하고, 사유를 벗어난 사유의 공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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