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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으면서 다르기도 한 모든 것들

 

김주옥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조형대학 교수

 

 

 2023년 8월 19일부터 9월 16일까지 파주 갤러리 끼에서 열린 《WATER ODYSSEY : MIRROR》와 그 후 열흘도 지나지 않아 근처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에서 9월 27일부터 11월 19일까지 열린 《MIMESIS SE18: The opposite Site》전시의 공통점은 바로 송창애 작가의 개인전이라는 사실이다. 송창애 작가는 《WATER ODYSSEY : MIRROR》에서는 인터랙티브 미디어아트 작품을 보여주었고,《MIMESIS SE18: The opposite Site》에서는 회화 작품을 보여주었다. 평소 회화 작가로 유명한 송창애 작가가 이렇게 새로운 매체를 사용하여 그것도 정말 하이엔드적인 방식으로 메타버스를 보여줄 수도 있는 미디어 작업을 해내다니 정말 놀라울 일이다.

 그동안 우리에게 ‘Water drawing’으로 잘 알려져왔던 송창애 작가는 ‘Waterscape’라는 테마를 가지고 평소 ‘물로써 물을 표현한다’라고 말하며 물을 통해 세상을 탐구해왔다. 잡히지 않는 물을 회화적 방식을 통해 캔버스에 표현한 작가는 2011년부터 10년이 훌쩍 넘어버리는 시간 동안 한결같이 물과 함께 작업을 하며 자연에 가장 가까운 은유를 물이라 보고 생명과 본질에 대해 이야기 하였다. 때로는 수행의 측면에서 끝없이 반복되는 행위를 통해 때로는 지난한 고행의 길과 같은 자신과의 싸움을 하며 작업은 그렇게 계속 발전되었다.

사실 작가가 자신이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테크닉을 사용하기 위해 매체를 선택하여 자신의 메세지를 작품으로 구현하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내용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매체를 선택하여 작업하기도 하지만 이러한 형식과 내용의 측면을 다루는 맥루언적 논의를 뒤로 하고서라도 우리에게 매체는 사실 작업을 표현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 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사실이다.

 송창애 작가가 《WATER ODYSSEY : MIRROR》전시에서 디지털 미디어를 사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 그 안에 등장하고 있는 여러 요소들은 작가의 회화 작품에서도 나타나는 것들이다. 하지만 회화에서 나타난 이야기가 세상과 작가와의 대화였다면, 이제 미디어아트 작품에서 등장하는 인터랙션은 세상과 작가가 나눈 대화를 관객이 보고 답변하는 구조라 볼 수 있다. 실제로 갤러리 끼에 들어가면 우리는 세 개의 공간 체험을 하게 되는데, 첫 번째는 ‘회화방’이라고 하는 작가의 회화가 전시된 공간, 두 번째는 ‘인터랙션방’이라는 관람객이 인터랙티브 미디어아트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 세 번째는 ‘아카이브방’이라는 물꽃 씨알이 보관된 장소이다.

우선 작가는 평소 회화 작업을 할 때 ‘한붓그리기’라고 표현하는, 한 번에 터치한 붓을 떼지 않고 그리는 방법을 사용하는데, 여기서 우연으로 가장한 필연적 결과물이 나타난다. 그리고 이것이 물의 파동을 통한 움직임의 형상이 되는데, 작가가 평소 회화에서 그것을 표현한다면 관객은 ‘물꽃그리기’라고 하는 실시간 인터랙티브 체험을 통해 물꽃 형상을 만들게 된다. 관객의 손이 허공에서 형상을 그리면 여러 기술적 요소가 동원되어 손의 움직임에 대한 궤적을 생성하고 이것이 알고리즘을 통해 최종 형태가 완성된다. 그리고 매번 관객이 그리는 물꽃은 실시간으로 저장되고 자동 아카이빙 되는 것이다.

 《WATER ODYSSEY : MIRROR》전시 제목에 등장하는 ‘거울’은 작가에게는 주체와 객체 사이에 보이지 않는 근원적 동일성의 은유이다. 그리고 이것은 인간과 인간의 본성을 매개하는 동시에 하나로 통합하는 고리를 상징하는데, 작가가 ‘물꽃’이라 표현하는 것은 관객들의 참여와 상호작용을 통해 만들어지는 자기 대면의 기회이자 세상을 향해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는 행위가 되기도 한다. 특히 여기에서 관객이 현장에서 그린 선드로잉이 작가의 만든 잎사귀가 랜덤하게 접목되는 것인데, 이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서로의 상호작용을 뛰어넘는 대화가 만들어진 시각적 대화의 기록이 된다.

《WATER ODYSSEY : MIRROR》 전시 전경

 전시장 공간을 둘러보고 있으면 벽으로 나뉘어진 공간에서 우리는 같은 세상의 다른 버전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어쩌면 이러한 필자의 상상이 송창애 작가가 거울을 언급한 이유와 같은 것은 아닐지 생각해본다. 만약 그럴 수 있다면 어쩌면 작가는 자신이 보는 세상이 자신의 모습을 반영한 것이고, 또한 관객이 표현하는 것이 우리가 만나는 타자이자 내가 보는 세상일 수도 있다는 상상이 가능하다.

 필자는 이 전시를 통해 작가의 작업을 보고 ‘삼분법적 시각’에 기초한 것이라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것은 변증법적 원리와 비슷해 보이지만 정과 반이 교차되어 합이라는 완성된 모습을 만드는 것이 아닌, 우리가 실재와 현상을 통해 세상을 표현하던 방식과 다른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제3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러한 제3의 공간을 설명하기 위해 미셸 푸코는 헤테로토피아를, 마크 오제는 비장소라는 표현을 사용했을 것이다. 필자는 이 제3의 공간을 물질과 비물질을 초월한 공간이라 생각한다.

 물론 단순한 표면적 원리로 작가가 회화라는 물성을 사용하고 디지털적 물성을 사용한 것이 물질과 비물질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 관객이 전시장에서 느끼고자 하는 작가가 제시한 세계와 그 세계의 질서를 파악하는 노력이 그 공간에 펼쳐질때 무수한 상상으로 뻗어나가며 만들어지는 사변적 세계는 나와 연결된 동시에 잡히지 않는 세계로 표현되고, 그것은 작가가 형상화의 방법으로 제시한 물꽃그리기가 되고 그것이 어딘가에 (비)물질 정보로 전환되어 물꽃 씨알로 저장될 것이다.

 벽을 통해 연결된, 뫼비우스와 같이 끊어질 수 없는 보이지 않는 이 연결은 공간을 넘어서 물질과 비물질을 넘어서 형상을 넘어서 관념과 사유를 뛰어넘어서 존재한다. 세상은 연결되어 있고 그 연결은 보이지 않는다. 경계없는 본성이 합쳐져 공간에서 체험으로 나타날 뿐이다. 작가-세계-관객으로 이루어진 그 무언가는 세 개의 다른 현상에 대한 본성으로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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