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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치부를 재현하는 실재의 풍경

 

 

김가현_미술공간 현 큐레이터 

2004년 5월6일. 미국 워싱턴포스트지에 이라크 아브 그레이브 수용소에서 자행된 미군의 이라크인 학대 장면의 사진이 공개된다. 나체의 이라크 남성들이 인간 피라미드를 이루고 있고 그 앞에서 미군 여성과 남성이 미소를 지으며 포즈를 취하고 있는 사진이였는데. 그 이미지가 너무 기괴하고 난폭해서 도덕적 판단을 할 이성마저 얼어붙을 정도였다.

송창애 작가가 최근 몇 년간 진행 중인 회화작업의 주요 타이틀이자 핵심주제' MæSS'는 이 사진에서부터 시작된다. 작가는 이 사건에서 모티브를 잡고 진실이라고 말하는 공식적인 무수한 말들에 의구심을 가졌으며, 진실과 세상의 논리가 근본적으로 불일치함을 목도한다. 그리고 인간적인 고통과 희생이 더 이상 희석되기 전에 붓을 들었다. 이렇게 사회적 결함을 미술로서 제대로 보여주는 작가는 오래간만이다. 과거 80년대의 사회비판적 작업들이 직접적으로 ‘정치성’을 보여줬다면, 송창애는 그런 정치성이 만들어 낸 현실 속 균열의 미시적인 징후를 드러내며 은폐된 것을 미학적으로 고발한다. 이렇게 사회적 피지배계층의 고통을 자연스럽게 작품 속에 투영하는 동물적 감각은 정치, 사회적으로 많은 변화를 겪은 세대였던 그녀가 어쩌면 태생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서글픈 숙명 같다. 엄격한 자체 검열로 잘 다듬어진 자기철학은 정확한 메시지와 설득력을 보여주면서도 회화작품이 가져야 할 미학적 힘 또한 포기 하지 않고 있다. 작가가 이런 무게 중심을 잘 잡고 있는 것은 20여년간 작업에만 쏟아 부은 헌신의 시간이 만들어 낸 노련함 때문이다

 

송창애의 작품에는 근래의 사회적 이슈를 담은 작품들이 보여주고 있는 착취, 폭력의 참상, 끔찍한 절망을 덤덤하고 무심한 시선으로 모사(模寫)하면서 자신의 노출을 철저하게 배제하는 냉소가 없다. 화폭의 형상들은 어느 정도 그녀의 자화상이며 참회록이다. 작품에서 보여 지는 이미지들은 규정할 수 없는 것들, 모호함과 가늠할 수 없는 것들로 둘러싸여 있다. 그러면서도 붉은 덩어리, 날렵한 흑연 드로잉에는 긴장이 흐른다. 무어라 말 할 수 없는 그 덩어리에 인간들이 내장처럼 뒤엉켜 있다. 얼굴 없는 형상들의 숭고한 슬픔들. 헛것을 본 것 같은 서늘함. 비현실성이 느껴지는 검은 공간들. 이 작업들이 결국은 인간의 풍경화를 본 뜬 것인데, 소설로 치자면 모든 우주만물이 뒤엉킨 결말을 맺고 있는 파국적 스토리 같다. 그러나 이런 이미지들이 작가의 도덕적 열정에서 시작된 것임을 되새긴다면 그녀의 목소리에 우리도 동조하지 않을 수 없다. 작가의 작품에서 조각난 인간의 몸은 절박하고 무력한 몸짓으로 세상의 불의를 보여주는 증거로서, 용서받을 수 없는 공포와 광기를 완전히 망각되지 못하게 우리에게 강렬하게 제시한다.

옆에서 보는 송창애는 섬세한 감수성을 지녔다. 그래서 고통을 자기화 하여 이야기 하는데 능하다. 그러면서도 동양화를 전공한 작가답게 표현에 과잉이 없다. 사회 비판적 작품들 중에는 사유에 도달하지 못한 채 화려한 기교로만 채워진 공허하고 생명감 없는 작품들, 또는 과도한 의욕과 목적의식으로 오히려 불편함을 느끼는 작품 들이 종종 있다.

그녀의 작품들은 담담하다. 그래서 뭉클하다. 그래서 송창애 작가의 작업은 필자의 서문보다 그녀의 작업 노트를 꼼꼼히 읽어보는 걸 권하고 싶다. 자기에 대한 말을 아끼는 사람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일기장처럼 이번 전시를 보다 깊은 시선으로 즐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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