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창애의 [Mæss Land]시리즈에 부쳐

Mass+Mess=Mæss Land

 

미술학박사 박기웅

송창애가 사용하는 작품의 제목은 덩어리, 대중 혹은 군중을 지칭하는 mass와 어수선함 혹은 혼란을 지칭하는 mess의 합성어이자 신조어로서 홀로코스트(Holocaust)나, 아부 그라이브(Abu Ghaib) 사태, 중국과 한국이 일제의 식민지 시절에 당했던 고통의 상징이 되었던 인간 마루타가 나뒹굴었던 땅을 지칭하며, 이러한 시신들이 거대하게 펼쳐진 대지 혹은 상징적으로 비극이 만연한 시대를 함의한다. 그래서 <Mæss Land>는 시대성과 장소를 동시에 지칭하는 저주받은 시대 혹은 저주받은 장소를 은유하는 키워드로 풀이된다. 이러한 키워드는 자신의 작품이 지향하는 방향이 범상하지 뿐만 아니라, 그 이면에는 매우 시사적인 담론이 숨겨져 있음을 직간접적으로 시사하고 있다.

 

우선 작가는 현시대의 글로벌시대에 걸맞게 국내 혹은 인접국가의 문제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일각에서 보여진 미묘하고도 섬세한 문제들에도 관심을 가지며, 지구의 저편에서 생겨난 비극들에 대해서도 마치 자신의 문제인 것처럼 생각하는 힘을 가졌다. 그래서 온 인류가 함께 고통하고 있는 인류애적인 시각에서 하나의 사건 혹은 그와 밀접한 의미들을 화폭에 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 이유는 세계의 수없이 많은 문제들이 그 지역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온 세계에 파장을 미치며 경우에 따라서는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비극적인 사건들로 확장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Mæss Land> 시리즈의 작품들에서 사용되는 이미지들은 단순히 우리와는 상관없는 사건, 혹은 우리들에게는 일어날 수 없는 일 등으로 비약해서 읽을 수 없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특히 한국 사람들은, 한때 거대하면서도 비극적인 상황에 처해있었으나 쉽게 잊는 습성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가령, 상수대교의 붕괴사건이나 삼풍백화점 붕괴사건 등에 대하여 불과 수년이 지났는데도 사람들은 쉽게 잊고 사회적인 문제로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하나의 비극이 단순히 우연히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에는 그에 준한 필연적인 원인이 있었을 것이고, 비극의 저편에는 이러한 문제를 발생하게 한 커다란 오류 혹은 범법과 같은 일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우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상황에 대하여 무심한 사람들에게 즉, 단순히 어느 우연적인 사건으로 바라보려는 사람들에게 일종의 경고의 음성과도 같은 역할을 하려는 것이 <Mæss Land>의 제작의도라 하겠다.

 

이러한 거대비극을 제공하는 원인을 분석해보면, 홀로코스트의 경우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650만 명의 유대인이 잔혹하게 학살된 인류 최대의 비극을 말하는 것으로, 나라가 없는 유대인들이 한시적으로 독일에 정주하면서 히틀러에게 당했던 사건을 말하는 데, 그 원인은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구약시대의 야곱의 아들들이 막내였던 요셉을 이집트 상인에게 팔아버린 뒤에 닥친 기근으로 인해 이집트로 식량의 위기를 탈출하기 위해서 한시적으로 이집트에서 살았던 이후 노예가 되어버린 뒤, 모세에 의해서 극적으로 구출되었으나, 그러한 이집트의 속박 이후에 나라가 없이 되어버린 것과 다른 하나는 로마의 식민지 시절에, 죄 없는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처형당하게 하였던 것 등을 들 수 있다. 아부 그라이브 사건의 경우는 인간의 덩어리, 혹은 무덤을 보여준 것으로 이라크 전쟁 당시에 발생하였던 희대의 사건을 지칭하는 바, 그 원인이 사담 후세인(Saddam Hussein)과 같은 이라크 정치지도자들이 빈 라덴(Osama Bin Laden)과 더불어 9.11 테러와 같은 심각한 범죄의 배후에 있었던 것으로 지목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마루타와 같은 비극은, 식민지 시절에 731부대에 의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인간을 생체실험의 대상이 되게 하였던 것으로서, 후기 조선시대의 심각한 부패와 노론소론 등의 당정싸움으로 나라의 안위를 돌보지 못했던 원인들이 36년간의 일제의 식민지가 되어버린 거대 사건을 촉발하는 잠재적인 원인이 되었던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비극에 대하여 작가는 인류에게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작가는 인류에게 이러한 원인제공을 한 것에 대한 경종을 울리는 것으로서, 직간접적으로 역사적인 비극을 야기시킨 사람들의 이기적인 시각을 비판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이 살아오면서 결정한 여러 가지의 문제점들에 대하여 상징적인 시각언어를 통해서 제시하려는 것이다.

추상과 구상의 사이에서 등장한 구름기표

<Mæss Land> 시리즈는 구상과 추상 혹은 설치의 사이에 있는데, 그것은 작가가 표현하려는 의지가 매우 강하게 드러나 있어서 표현체로서의 기호적인 표현의 범주에서 자유롭게 왕래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가가 의도적으로 드러내는 기표들은 어떤 경우에는 구상성이 강한 이미지가 바탕이 되기도 하고, 어떤 경우는 색채의 이중기호가 대조적으로 충돌하거나 병치되어 있어서, 미적 기호로서의 호소력을 강하게 하는 경향을 말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작품 <Mæss Land-cloud or clod> 시리즈의 경우는 블랙에서 버밀리안으로 이어지면서, 여백의 백색기호와 만나게 되는데, 그것은 실재적으로 전체가 불게 물든 상황과는 다른 강렬함을 바탕으로 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시각기호를 너무 잔인하게 혹은 너무 심각하게 비쳐지는 것에 대하여 작가는 조금 망설인다.

 

그래서 작가가 생각해낸 것이 바로 구름기호 혹은 구름기표이다. 그것은 심리적으로 연막과도 같아서 비극적인 상황을 감싸 안는 매트릭스 혹은 포용체가 되는 것이다. 관객들은 이러한 구름효과를 통해서 조금 안심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그것은 비극적인 상황을 담은 예술이 작가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하여 순화되는 상황을 말하는 것이다. 가령, 프란시스 고야(Francis Goya)나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혹은 키키 스미스(Kiki Smith)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뒤틀린 이미지나 찢어진 얼굴들에 비쳐진 잔인성이 작가의 미묘한 순화과정을 통해서 잔인한 기표가 미적으로 풀이될 수 있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서, 출중한 작가들이 자신의 내면의 힘을 동원하여 관객들에게 호소하는 힘으로 순화되는 과정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보통으로 거대한 전쟁이 지나간 뒤에는 비극의 순화과정으로서 예술의 힘을 동원하기도 하는데, 세계제1차대전의 다다이즘의 이면에 있었던 아모리쇼(Armory Show)가 그러하고, 세계 제2차대전의 앵포르멜의 회화들이나, 액션페인팅과 같은 작품들이 발생하게 된 배경이 바로 그러한 이유라 할 수 있는데, 송창애의 <Mæss Land>도 이러한 현대의 잔인했던 홀로코스트나 이라크 전쟁 일제의 식민지시절의 만행과 같은 순간을 순화시키고자 하는 의지에서 자신의 작품들을 제작한 것으로 풀이된다. 

카타르시스적 표현을 넘는 흘림체

그것은 단순히 비극을 순화하려는 카타르시스적인 표현의 범주를 넘어서, 인류가 안고 있는 거대한 숙제들을 풀어보려는 작가의 의지에서 발현하는 것으로서, 시각적인 경고의 메시지가 함축적으로 내재되어 있다. 그것은 과거의 경우, 한 독재자 혹은 결정권을 지닌 위정자들의 잘못으로 인해서 야기시켰던 문제들이 다수인데 반하여, 송창애가 주도적으로 표현하려는 의미는 <Mæss Land>에서 시사하는 바처럼, 군중들의 오류 혹은 잘못으로 인해서 발생할 수도 있는 거대한 비극을 암시적으로 표현하고 있다.여기에서의 군중 혹은 민중 혹은 범인들의 잘못은 무엇을 시사하는가? 그것은 모더니즘 이후 혹은 산업혁명 이후에 시작된 시민계급의 상승을 계기로 하여 어느 특정인이 하나의 사회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갔던 시대에서 집단이 이끌어가는 사회가 되어버린 현대사회의 구조들을 비판적으로 다루는 것이기도 한데, 1960년대 이후 팝 문화가가 기승을 부리면서, 소비가 촉진되고, 상업주의가 만연하게 되면서, 점차적으로 물신숭배적인 사상이 인류를 엄습하면서, 지구의 온난화 혹은 온실효과가 상승하고, 환경파괴 유전자 조작 등으로 인하여 앞으로 불어 닥칠 인류의 대 재앙에 대한 비극적인 내용들이 은연중에 함축적으로 예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류의 가치관에 대한 작가의 의지를 표출한 것으로서 단순히 비극을 비극으로 보지 않고, 비극을 전제로 한 인류의 근원적인 문제들에 대하여 작가로서 경고하려는 의무감을 말하는 것인데, <Mæss Land>에서 보여준 발가벗겨진 시신들의 쌓임을 통해서 표현하려는 것이다. 또한, 여기에 등장하는 미묘한 흘리기의 기법은 단순한 흘리기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데,그것은 회화성을 촉진하고 물감이 지니고 있는 물성과 중력을 활용한 기법으로서, 작품에서 하나의 상황을 순화시켜 표현하려는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나, 보는 사람들의 시각에서는 그것은 죽음을 상징하는 기표 혹은 비극을 상징하는 눈물 등으로 해석가능하며, 때로는 이러한 대지를 적시는 비로 풀이되는데, 이 세 가지의 기의(signified)들을 함의하는 표현방식에서 작가가 비극들을 대하는 마음자세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죽어 엎드러진 시신들의 복합덩어리

<Mæss Land>에서는 풀 한 포기도 없이 덩그러니 사람들의 시신들로 가득하다. 그곳에는 광우병에 의해서 사살된 가축들마냥 사람들의 시신들이 끝없는 대지를 장식한다. 그리고 그것은 안개 속으로 펼쳐진 비극의 마당에서 처절하게 엎드러져 있다. 다만 작가는 이러한 상황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그리는 것보다는 흘리기 혹은 버밀리안과 블랙의 조합으로 추상화하기도 한다. 하나의 화면에는 피와 주검이 범벅이 된 거대한 산과 같은 덩어리 혹은 들판과 같은 광경이 펼쳐진다. 마치, 녹조나 적조 현상으로 인해서 산소공급이 멈추어진 상태에서 엄청나게 떼죽음을 당한 고기 떼들과도 같은 모습이 인류에게 불어 닥칠 대재앙의 모습처럼 그려지고 있다. 그려진 작품들의 모습들에서, 작가는 세상의 네거티브한 미래를 보여준다. 그것은 니체의 니힐리즘과도 통하며,아도르노의 디스토피아(dystopia)를 상징하는데, 물신숭배적인 가치관의 부정적인 끝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Mæss Land>는 인류애와 비극을 동시에 표현하는 앰비발란트(ambivalent)적 이중기표이며, 포스트모던 사회의 이면에 깔린 드라이한 감성과 세속적인 속성을 강하게 드러내는 엄숙함을 동시에 지닌다. 또한, 인류의 아픔을 재구성하여 단순히 비극을 노출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작가의 예술적인 감성으로 치유해보려는 혹은 아픔을 순화시켜보려는 작가의 작은 의지가 담겨있는 것이기도 하다.

<통치자에서 대중들에 이르는 복합이기심에 대한 경고>

< Mæss Land>의 해석에 있어서의 하이라이트는 작가가 사용하는 복합어의 시사성인데, 그것이 단순히 어느 특정인이나 특정집단을 겨냥한 시사적인 발언이 아니라 다중적인 의미의 기표를 생각하는 의도로서 필수적인 것으로서 복합적인 의미를 담는 그릇이 되는데, 이러한 일면에서 작가는 <Mæss Land>를 통해서, 전술한 바 한쪽으로 치우친 통치자들의 이기심과 대중들의 이기적인 심리를 복합적으로 고발한다. 그것은 은근슬쩍 방류해버린 폐수, 양심의 가책도 받지 않고 버리는 산업쓰레기, 자신의 부를 축적하기 위해서 유전자 조작을 통해서 병충해에 강하게 버티고, 급성장하는 식물을 재배하여 속성으로 만들어진 콩으로 쓴 두부나 매주를 판매하는 업자들, 환경호르몬을 배출하는 기업이기심, 환경오염이 야기되는 공장을 제3세계의 국가에서 제조하는 사람들, 저임금과 공해에 시달리게 만드는 선진국 기업들의 기업이기심들에 대하여 복합적으로 경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작품의 제목에서 보여주는 <Mæss Land>의 일면에서 어떤 경우는 강렬하게 어떤 경우는 상징적으로 부드럽게 부각되는데, 전쟁시절 게슈타포가 행했던 인간이 짓이기고 인간을 고문하는 행태와 마찬가지로,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산과 강 바다들에서 언젠가는 불어 닥칠 비극에 대하여 그것을 방지하고자 하는 작가의 마음을 표출하여, 자신들과는 그다지 상관이 없는 것으로 막연히 생각하는 대중들의 복합이기심에 대한 강한 경고의 음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역사의 치부를 재현하는 실재의 풍경

 

 

김가현_미술공간 현 큐레이터 

2004년 5월6일. 미국 워싱턴포스트지에 이라크 아브 그레이브 수용소에서 자행된 미군의 이라크인 학대 장면의 사진이 공개된다. 나체의 이라크 남성들이 인간 피라미드를 이루고 있고 그 앞에서 미군 여성과 남성이 미소를 지으며 포즈를 취하고 있는 사진이였는데. 그 이미지가 너무 기괴하고 난폭해서 도덕적 판단을 할 이성마저 얼어붙을 정도였다.

송창애 작가가 최근 몇 년간 진행 중인 회화작업의 주요 타이틀이자 핵심주제' MæSS'는 이 사진에서부터 시작된다. 작가는 이 사건에서 모티브를 잡고 진실이라고 말하는 공식적인 무수한 말들에 의구심을 가졌으며, 진실과 세상의 논리가 근본적으로 불일치함을 목도한다. 그리고 인간적인 고통과 희생이 더 이상 희석되기 전에 붓을 들었다. 이렇게 사회적 결함을 미술로서 제대로 보여주는 작가는 오래간만이다. 과거 80년대의 사회비판적 작업들이 직접적으로 ‘정치성’을 보여줬다면, 송창애는 그런 정치성이 만들어 낸 현실 속 균열의 미시적인 징후를 드러내며 은폐된 것을 미학적으로 고발한다. 이렇게 사회적 피지배계층의 고통을 자연스럽게 작품 속에 투영하는 동물적 감각은 정치, 사회적으로 많은 변화를 겪은 세대였던 그녀가 어쩌면 태생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서글픈 숙명 같다. 엄격한 자체 검열로 잘 다듬어진 자기철학은 정확한 메시지와 설득력을 보여주면서도 회화작품이 가져야 할 미학적 힘 또한 포기 하지 않고 있다. 작가가 이런 무게 중심을 잘 잡고 있는 것은 20여년간 작업에만 쏟아 부은 헌신의 시간이 만들어 낸 노련함 때문이다

 

송창애의 작품에는 근래의 사회적 이슈를 담은 작품들이 보여주고 있는 착취, 폭력의 참상, 끔찍한 절망을 덤덤하고 무심한 시선으로 모사(模寫)하면서 자신의 노출을 철저하게 배제하는 냉소가 없다. 화폭의 형상들은 어느 정도 그녀의 자화상이며 참회록이다. 작품에서 보여 지는 이미지들은 규정할 수 없는 것들, 모호함과 가늠할 수 없는 것들로 둘러싸여 있다. 그러면서도 붉은 덩어리, 날렵한 흑연 드로잉에는 긴장이 흐른다. 무어라 말 할 수 없는 그 덩어리에 인간들이 내장처럼 뒤엉켜 있다. 얼굴 없는 형상들의 숭고한 슬픔들. 헛것을 본 것 같은 서늘함. 비현실성이 느껴지는 검은 공간들. 이 작업들이 결국은 인간의 풍경화를 본 뜬 것인데, 소설로 치자면 모든 우주만물이 뒤엉킨 결말을 맺고 있는 파국적 스토리 같다. 그러나 이런 이미지들이 작가의 도덕적 열정에서 시작된 것임을 되새긴다면 그녀의 목소리에 우리도 동조하지 않을 수 없다. 작가의 작품에서 조각난 인간의 몸은 절박하고 무력한 몸짓으로 세상의 불의를 보여주는 증거로서, 용서받을 수 없는 공포와 광기를 완전히 망각되지 못하게 우리에게 강렬하게 제시한다.

옆에서 보는 송창애는 섬세한 감수성을 지녔다. 그래서 고통을 자기화 하여 이야기 하는데 능하다. 그러면서도 동양화를 전공한 작가답게 표현에 과잉이 없다. 사회 비판적 작품들 중에는 사유에 도달하지 못한 채 화려한 기교로만 채워진 공허하고 생명감 없는 작품들, 또는 과도한 의욕과 목적의식으로 오히려 불편함을 느끼는 작품 들이 종종 있다.

그녀의 작품들은 담담하다. 그래서 뭉클하다. 그래서 송창애 작가의 작업은 필자의 서문보다 그녀의 작업 노트를 꼼꼼히 읽어보는 걸 권하고 싶다. 자기에 대한 말을 아끼는 사람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일기장처럼 이번 전시를 보다 깊은 시선으로 즐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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